‘가족 동의 없이 장기기증이 가능하다?’ – 법적 진실과 최근 움직임 정리

목차
- 들어가며
- 현행 장기기증법 이해하기
- 최근 법 개정안: 어떤 내용이 제안됐나?
- 아직 현실이 아닌 이유
- 사회적 맥락: 왜 이런 개정이 필요한가
- 해외 사례 비교
- 윤리적 쟁점과 논의
- 실제 사례와 통계로 보는 현실
- 향후 과제와 제언
- 맺음말
1. 들어가며
최근 온라인과 언론에서 “한국도 이제 가족 동의 없이 장기기증이 가능해졌다”는 제목의 기사가 잇따라 등장했습니다. 일부 유튜브 채널과 SNS 게시물은 이를 단정적으로 보도하며, “본인이 서약만 하면 가족이 반대하더라도 기증이 진행된다”는 식으로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정보는 장기이식 대기자와 기증을 고려하는 사람에게는 희소식처럼 들리지만, 동시에 법률과 의료 현실을 잘 모르는 대중에게는 큰 혼란을 초래할 수 있습니다.
2025년 8월 현재, 한국에서 가족 동의 없이 장기기증을 실행할 수 있는 법률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본인의 생전 의사를 최우선으로 인정하자는 법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이며, 통과 여부를 두고 사회적·윤리적 논쟁이 활발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현행 제도, 개정안의 주요 내용, 해외 제도와의 비교, 실제 통계와 사례, 윤리적 쟁점까지 종합적으로 다뤄 정확한 정보를 제공합니다.
2. 현행 장기기증법 이해하기
한국의 장기기증은 「장기등 이식에 관한 법률」(이하 장기이식법)에 근거하여 시행됩니다. 이 법의 제1조 목적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 법은 장기등의 적정한 이식을 통하여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고 생명을 연장하는 데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
2-1. 기본 원칙: 생전 의사 + 가족 동의
현재 법률 체계에서는 기증자가 생전에 장기기증 서약서를 작성했더라도, 뇌사 판정 이후 가족의 동의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가족이 동의하지 않으면 기증은 진행되지 않습니다.
2-2. 가족 동의권의 순위
장기이식법 제12조에 따라, 동의 순위는 다음과 같습니다.
- 배우자
- 직계비속(자녀)
- 직계존속(부모)
- 형제자매
- 4촌 이내의 친족
2-3. 뇌사 판정 및 절차
- 1차·2차 뇌사 판정 → 장기이식관리센터(KONOS) 통보 → 장기 적합성 검사 → 기증 절차 진행
- 이 과정에서 의료진은 가족에게 충분한 설명을 제공하고, 서면 동의를 받아야만 합니다.
즉, 한국의 현행 제도는 ‘기증자의 자기결정권’을 존중하면서도 ‘유족의 심리적 수용’을 법적으로 보장하는 구조입니다.
3. 최근 법 개정안: 어떤 내용이 제안됐나?
2024년 9월, 국민의힘 김예지 의원이 장기이식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이 개정안의 핵심은 “본인의 명시적 의사가 있을 경우, 가족 반대에도 불구하고 기증 절차를 진행”하는 것입니다.
3-1. 주요 내용
- 생전 의사 우선 원칙
- 본인이 장기기증에 대해 서면 또는 전자 방식으로 명확히 동의한 경우, 가족의 반대와 무관하게 기증 가능
- 기증 의사 확인 체계 강화
- 운전면허증, 건강보험증, 주민등록증 등에 기증 여부 표시 의무화
- 의료기관과 장기이식관리센터 시스템 연동
- 무연고자 절차 명문화
- 가족이 전혀 없는 경우, 국가·지자체가 대리 결정 가능
4. 아직 현실이 아닌 이유
법 개정안이 발의되었다고 해서 즉시 제도가 시행되는 것은 아닙니다.
- 입법 절차 미완료: 국회 상임위 심사, 본회의 의결, 대통령 공포 후 6개월~1년의 유예기간 필요
- 시행령·시행규칙 개정: 현장 적용을 위해 세부 지침 변경 필요
- 사회적 합의 부족: 찬성 측은 기증률 향상과 자기결정권 존중을 주장하지만, 반대 측은 유족 갈등·분쟁 가능성을 우려
5. 사회적 맥락: 왜 이런 개정이 필요한가
한국의 뇌사자 장기기증 건수는 2016년 573건에서 2023년 400건 이하로 줄어들었습니다. 단순한 일시적 감소가 아니라, 구조적인 요인들이 맞물린 결과입니다.
첫째, 가족 동의 철회 비율 증가입니다. 뇌사 판정 직후 가족에게 기증 여부를 묻는 과정에서, 초기에는 동의했더라도 정서적 부담·정보 부족·불신 등으로 최종 철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한국은 가족 중심의 장례·의사결정 문화가 강하기 때문에, 생전 등록자라 하더라도 가족이 ‘마지막 거부권’을 행사하는 비율이 높습니다.
둘째, 연명치료중단결정법 시행(2018년)의 영향입니다. 이 법이 도입되면서 뇌사에 도달하기 전 단계에서 연명치료를 중단하는 사례가 늘었고, 이로 인해 장기기증 가능성 자체가 줄었습니다. 뇌사 판정 이전에 사망에 이르면 기증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전문가들은 다음과 같이 지적합니다.
- 생명 구호율 저하: 현재 한국에서 이식 대기자는 약 3만 명에 달하지만, 매년 2,000명 이상이 기증자를 기다리다 사망합니다. 기증자 수가 줄면 이 수치는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 제도적 병목 해소 필요: 가족 동의 거부가 기증 불발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입니다. 본인 의사가 명확하다면 가족이 이를 뒤집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 개선이 시급합니다.
- 국민 인식 변화 반영: 자기결정권 강화 요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장기기증 역시 ‘내 생명 이후의 선택’이라는 점에서 개인의 자율권 존중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6. 해외 사례 비교
한국의 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해외의 다양한 제도를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됩니다.
- 스페인: ‘추정 동의제(Opt-Out)’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즉, 별도의 거부 의사 표시가 없다면 자동으로 기증 의사자로 간주합니다. 가족이 반대하는 경우도 있지만, 의료진과 전문 코디네이터의 설득 절차를 거쳐 상당수는 기증이 진행됩니다. 이 제도로 스페인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뇌사자 기증률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 미국: 주마다 제도가 다릅니다. 하지만 대부분 면허증 발급 시 기증 의사를 표시하면 법적으로 강력한 효력을 가지며, 가족이 이를 번복할 수 없습니다. 기증 동의가 ‘법적 계약’의 성격을 띠는 셈입니다.
- 영국: 2020년 추정 동의제를 도입했습니다. 다만 가족이 매우 강하게 반대하는 경우, 의료진이 예외적으로 기증을 중단할 수 있습니다. 즉, 법과 현실 사이에 절충이 존재합니다.
- 일본: 2010년 법 개정으로 15세 미만 아동도 가족 동의 시 기증이 가능해졌습니다. 본인 의사가 없을 경우 전적으로 가족이 결정합니다. 일본은 문화적으로도 가족 중심 의사결정이 뿌리 깊게 작동하고 있습니다.
이 비교를 통해 알 수 있는 점은, 본인 의사 우선 원칙과 가족 의사 반영 사이의 균형을 각국이 다른 방식으로 조율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7. 윤리적 쟁점과 논의
장기기증 제도 개정은 단순한 법률 문제가 아닙니다. 자기결정권과 가족 자율권, 의료에 대한 신뢰, 그리고 문화적 요소가 얽힌 복합적인 문제입니다.
- 자기결정권 vs 가족 자율권
자기결정권은 민주사회에서 핵심 가치입니다. 본인이 생전에 남긴 의사는 존중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가족이 장례를 주관하는 문화와 정서가 강해, 사망 직후 가족이 심리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법적으로 이를 무시하기 어렵다는 현실적 문제가 있습니다. - 의료 신뢰성
‘가족 동의 없이 진행되는 장기기증’이 마치 강제 기증처럼 오해될 수 있습니다. 의료기관이 기증자의 생명을 연장하지 않고 장기 적출을 우선시할 것이라는 불신이 생기면, 제도 전체가 흔들릴 수 있습니다. - 문화적 요소
한국은 유교적 전통과 가족 중심 의사결정이 뿌리 깊습니다. 사망 직후 장례 절차와 애도 과정이 중시되는 사회에서, 법 개정이 현실적으로 뿌리내리려면 문화적 설득과 인식 개선이 병행되어야 합니다.
8. 실제 사례와 통계로 보는 현실
한국장기조직기증원(KODA) 자료에 따르면, 2023년 뇌사자 장기기증 요청은 총 1,002건이었습니다. 이 중 가족 동의율은 50%대에 불과합니다. 절반 가까이가 기증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셈입니다.
더욱이 동의 후 철회 사례도 매년 수십 건씩 발생합니다. 이는 가족의 심리적 동요, 기증 절차에 대한 불신, 장례 지연 우려, 종교적 이유 등 다양한 요인이 작용합니다.
예를 들어, 생전 등록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가족이 “부검처럼 훼손될 것”이라는 오해 때문에 철회하는 사례가 보고됩니다. 또, 코로나19 시기에는 감염 위험 우려로 기증 절차를 꺼리는 경향이 강해졌습니다.
이러한 현실은 제도적 개선뿐 아니라, 정확한 정보 제공·심리적 지원·문화적 장벽 해소가 병행되어야 함을 보여줍니다.
9. 향후 과제와 제언
- 공청회·여론조사 확대
법 개정이 국민의 신뢰를 얻으려면 사회적 합의 과정이 필수입니다. 다양한 계층과 종교, 문화적 배경을 반영한 공청회와 여론조사를 정례화해야 합니다. - 의사 표시 제도 의무화 및 교육 강화
운전면허·주민등록증 발급 시 기증 의사 표시를 기본 절차에 포함하고, 학교·군대·공공기관 등에서 장기기증 교육을 강화해야 합니다. - 유족 지원 프로그램 마련
심리 상담, 장례 지원비, 기증자 추모 행사 등을 통해 유족이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합니다. 이러한 지원은 경제적 보상과 달리, 기증의 가치를 인정하는 사회적 메시지가 됩니다. - 안전장치 도입
기증 의사 확인 절차를 전자화하고, 최소 2단계 이상의 중복 검증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이를 통해 ‘본인 의사 위반’ 가능성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10. 맺음말
2025년 8월 현재, “가족 동의 없이 장기기증이 가능하다”는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여전히 법적으로는 가족 동의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만약 본인 의사 우선 원칙을 명문화하는 법 개정이 통과된다면, 한국의 장기기증 제도는 커다란 전환점을 맞게 될 것입니다.
이 변화는 단순히 제도 개선을 넘어, 국민 생명 보호, 윤리적 가치 실현, 문화적 패러다임 전환이라는 세 가지 측면에서 역사적 의미를 가질 수 있습니다.
결국 장기기증 제도의 성패는 ‘법’이 아니라 국민의 신뢰와 공감에 달려 있습니다.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는 동시에, 국민이 안심하고 기증 의사를 밝힐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앞으로의 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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